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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의 제목을 보았을 때 똑똑한 괴도가 경찰을 따돌리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세 파트를 다 보고 나니 기억에 남은 건 화려한 변장 장면이 아니라, 아버지의 이름을 되찾으려다 정작 자기 아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한 남자의 표정이었습니다. 넷플릭스 《뤼팽》 파트 1~3, 생각보다 훨씬 인간적인 드라마였습니다. 처음에는 가볍게 볼 수 있는 범죄 오락물을 기대했습니다. 실제로 1화를 보고 나서는 “이 정도면 그냥 재미있게 보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몇 화를 더 보다 보니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아산이라는 인물에게 감정이 많이 따라가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특히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겠다는 마음과 자신의 가족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 계속 충돌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드라마를 볼 때 주인공이 무조건 옳은 인물인지보다, 그 사람이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를 더 중요하게 보는 편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뤼팽》의 아산은 상당히 흥미로운 인물이었습니다. 분명 응원하고 싶은데, 어느 순간에는 “그래도 이 방법이 정말 최선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리뷰에서는 단순히 줄거리나 반전만 이야기하기보다, 제가 세 파트를 직접 보면서 느꼈던 복수와 가족에 대한 생각, 그리고 드라마가 아쉽게 느껴졌던 부분까지 함께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아산의 복수, 정의인가 집착인가
처음에는 아산이 상대방의 허점을 이용해 물건을 훔치는 장면이 꽤 통쾌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파트 1 중반쯤부터 마냥 통쾌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아산 디오프가 움직이는 이유가 명확해질수록 그 이유가 오히려 마음에 걸렸습니다.
주인공 아산의 아버지 바바카르는 부유한 펠레그리니 가문에 운전기사로 일하다가 고가의 목걸이를 훔쳤다는 누명을 씁니다. 여기서 '누명(冤罪)'이란 실제로 저지르지 않은 범죄에 대해 법적·사회적 책임을 강제로 지게 되는 상황을 말합니다. 바바카르는 결국 감옥에서 생을 마감하고, 아산은 아버지가 남긴 아르센 뤼팽 소설 한 권을 붙들고 성인이 됩니다.
아산이 목걸이를 되찾고 펠레그리니 가문을 압박하는 과정은 일반적으로 정의 구현처럼 보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봤습니다. 그런데 직접 세 파트를 따라가며 보니 이 장면들이 조금 다르게 보였습니다. 처음에는 아산이 펠레그리니 가문을 골탕 먹이는 장면이 꽤 통쾌했습니다. 오랫동안 숨겨져 있던 진실을 하나씩 밝혀내는 과정도 재미있었고, 아산이 상대보다 한발 앞서 움직일 때는 저도 모르게 “이번에는 어떻게 빠져나갈까?” 하면서 보게 됐습니다. 그런데 복수가 길어질수록 처음의 통쾌함이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현실에서도 억울한 일을 당하면 당사자는 그 일을 쉽게 잊지 못할 텐데, 아산은 그 기억을 자신의 삶 전체를 움직이는 힘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진실을 밝히는 것”과 “복수를 계속하는 것”이 정말 같은 의미인지 생각하게 됐습니다. 저라면 아산처럼 끝까지 상대를 무너뜨리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물론 실제 상황과 드라마 속 상황은 다르지만, 피해를 입은 사람이 정의를 되찾는 과정에서 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면 그때부터는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아산은 진실을 밝히는 방법으로 속임수, 신분 위조, 절도를 선택합니다. 자신이 싫어했던 사람들이 쓴 방식을 고스란히 돌려주는 것입니다. "억울함을 풀기 위해 얼마나 닮아도 되는가"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특히 아산이 상대의 약점을 이용하고 거짓말과 변장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질문이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펠레그리니 가문이 돈과 권력을 이용해 바바카르를 희생시켰다면, 아산은 자신의 지능과 기술을 이용해 그들에게 같은 방식으로 되갚습니다. 방법은 다르지만 결국 상대방을 속인다는 점에서는 닮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산을 완전히 정의로운 주인공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이 모호함이 《뤼팽》의 재미라고 느꼈습니다. 주인공이 완벽하게 선한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시청자가 계속 그의 선택을 판단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넷플릭스 공식 자료에 따르면 《뤼팽》은 모리스 르블랑이 창조한 아르센 뤼팽을 모티브로 한 현대 범죄 드라마로, 주연 오마르 시가 아산 디오프 역을 맡아 파트 1 공개 당시 비영어권 드라마 최초로 글로벌 넷플릭스 상위권에 진입하는 성과를 기록했습니다(출처: Netflix 공식 페이지). 수치만 보면 분명히 성공한 작품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흥행 뒤에 있는 아산의 도덕적 모순이 이 드라마를 단순한 오락물 이상으로 만든다고 봅니다.
- 아산의 복수는 아버지의 누명에서 출발하지만, 수단은 변장·신분 위조·절도로 이루어집니다.
- 펠레그리니 가문은 돈과 권력으로 진실을 눌렀고, 아산은 속임수로 그 벽을 뚫으려 합니다.
- 결과적으로 아산이 사용하는 방식과 상대방이 사용한 방식 사이의 거리가 생각보다 좁습니다.
복수를 끝내야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사람
아산을 보면서 저는 ‘자유’라는 단어도 계속 생각하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아산이 경찰을 따돌리고 원하는 곳 어디든 나타나는 모습이 자유로운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세 파트를 이어서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아산은 과거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에게 일어난 일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오랫동안 그의 행동을 결정했고, 그 과정에서 가족과 자신의 현재까지 계속 위험에 노출됩니다. 겉으로는 누구보다 자유롭게 움직이는 사람인데, 실제로는 과거의 사건에 가장 강하게 묶여 있는 사람이었던 셈입니다. 이 부분이 저는 오히려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사람도 과거에 억울했던 일이나 후회되는 일을 오래 붙잡고 있으면 현재의 생활까지 그 기억에 영향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물론 아산의 상황은 극단적이지만, ‘과거를 해결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감정 자체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산에게 진짜 자유가 생기는 순간은 경찰에게서 도망치는 순간이 아니라, 자신을 계속 움직이게 했던 복수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순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족을 지킨다는 말의 모순
시즌 2에서 아들 라울이 위험에 처하는 장면을 보면서 제가 처음 든 생각은 '이건 아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장면에서는 아산을 무조건 응원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 과정에서 라울이 위험해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이제는 그만하면 안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자녀가 있는 입장에서 보면 이 부분은 더 복잡하게 느껴집니다. 가족을 지키겠다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가족에게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은 채 혼자 모든 위험을 감당하려는 방식이 정말 가족을 위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혼자 해결하려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희생일 수 있지만, 남겨진 가족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불안과 혼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산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고 말하지만, 가족이 위험해지는 이유는 대부분 아산이 사건 한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심리전(psychological game)입니다. 여기서 심리전이란 상대방의 믿음과 판단을 역으로 이용해 원하는 방향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전략을 뜻합니다. 아산은 경찰이 자신을 잡으러 오는 타이밍에 맞춰 일부러 잘못된 단서를 흘리고, 상대가 안심할 때 반격을 준비합니다. 이 방식은 드라마적으로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이 능력이 가족을 향할 때는 달라집니다.
아산은 클레르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정보 차단이 결국 클레르를 더 위험하게 만드는 상황이 반복됩니다. 저는 오히려 클레르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 많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위험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확한 상황을 알 수 없다면 얼마나 답답할까 싶었습니다. 아산은 자신이 모든 것을 해결한 뒤 가족에게 안전한 결과만 보여주고 싶어 하지만, 실제로 가족이 원하는 것은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에서 서로 믿고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산의 가족에 대한 사랑은 의심할 필요가 없지만, 가족을 대하는 방식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한다고 해서 항상 상대를 대신해 결정할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족을 위해 감추고, 감추기 때문에 가족이 더 무방비 상태가 됩니다. 일반적으로 아산이 가족을 헌신적으로 사랑하는 인물로 읽히지만, 아산은 가족을 '지키는' 것과 가족과 '함께하는' 것을 계속 혼동합니다.
파트 3에서 아산이 자신의 죽음을 위장한 채 새 신분으로 살아가면서도 멀리서 가족을 지켜보는 장면이 있습니다. 솔직히 이 부분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그 사람 앞에서 죽은 척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니. 드라마적 과장이지만, 그 안에 담긴 질문은 현실적입니다. 자신의 존재 자체가 위험이 될 때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뤼팽식 서사 구조가 만드는 재미와 한계
《뤼팽》이 다른 범죄 드라마와 구별되는 지점은 아르센 뤼팽이라는 원형 캐릭터를 직접 등장시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아산은 뤼팽이 아닙니다. 아버지에게 받은 소설 한 권을 읽고 뤼팽처럼 생각하기로 선택한 사람입니다. 이 설정이 중요한 이유는, 뤼팽을 모방한다는 행위 자체가 아산이 아버지와 연결되어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아산이 구사하는 기법 중 하나가 변장술(disguise technique)입니다. 단순히 겉모습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역할을 정확히 연기해 의심을 사전에 차단하는 방식입니다. 이 변장술이 파트 1에서 처음 등장할 때는 꽤 신선했습니다. 별것 아닌 것 같은 앞 장면이 두 화 뒤에서 복선이 됩니다. "아, 그래서 저 행동을 했구나" 싶은 순간이 파트 1에만 서너 번은 됩니다.
그런데 세 파트를 거치면서 이 구조가 점점 예측 가능해지기 시작합니다. 아산이 궁지에 몰릴 때마다 "분명히 이것도 계획의 일부겠지"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겁니다. 이 부분은 파트 1을 재미있게 본 저에게도 가장 아쉬웠던 점입니다. 처음에는 아산이 무엇을 준비했는지 전혀 몰라서 저도 함께 속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비슷한 방식의 반전이 반복되다 보니 나중에는 위기 상황이 나와도 “아마 아산이 이미 다른 계획을 세워놨겠지”라고 예상하게 됐습니다. 반전이 많다는 것이 반드시 긴장감을 높여주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청자가 주인공을 너무 믿게 되면 오히려 주인공이 위기에 처했을 때의 불안감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저는 파트 1에서는 이 장치가 상당히 신선했지만, 파트 2와 파트 3에서는 조금 더 예상하지 못한 방식의 실패나 대가가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모든 위기가 복선 회수로 귀결되다 보니 진짜 위기감이 줄어드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형사 유세프 게디라 캐릭터는 이 한계를 어느 정도 보완합니다. 게디라는 뤼팽 소설을 잘 아는 경찰로, 아산이 뤼팽의 방식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눈치챕니다. 여기서 내러티브 경쟁(narrative competition)이 발생합니다. 같은 텍스트(뤼팽 소설)를 읽은 두 사람이 그 텍스트를 각자의 방식으로 활용하며 대립하는 구조입니다. 이 구도가 이 드라마에서 가장 지적으로 재미있는 부분이었습니다. 저는 게디라가 등장할 때 오히려 아산이 긴장하는 모습이 재미있었습니다. 다른 경찰들은 아산이 만든 함정에 쉽게 빠지는 경우가 많지만, 게디라는 뤼팽이라는 공통된 언어를 가지고 아산을 추적합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직접 대화를 많이 나누지 않아도 서로의 생각을 어느 정도 읽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아산이 아무리 천재적인 계획을 세워도 그것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상대가 존재해야 긴장감이 살아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게디라는 단순히 아산을 쫓는 경찰이라기보다 아산의 지능을 드러내주는 거울 같은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세 파트를 모두 보고 나니 아산을 바라보는 제 시선도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파트 1에서는 경찰을 속이고 위기를 빠져나가는 아산의 능력이 가장 재미있었습니다. 저 역시 다음에는 어떤 방법으로 상대를 속일지 궁금해서 계속 다음 화를 누르게 됐습니다. 하지만 파트 2에서는 아산의 과거와 가족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연결되면서 단순히 그의 작전이 성공하기를 바라기만 하기는 어려워졌습니다. 아산이 성공할수록 가족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파트 3에서는 변장이나 반전보다 아산이 앞으로 어떤 삶을 선택할지가 더 중요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세 파트를 이어서 보면서 이 드라마의 중심이 조금씩 변한다고 느꼈습니다. 파트 1이 ‘어떻게 복수할 것인가’에 가까웠다면, 파트 2는 ‘복수하는 과정에서 가족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파트 3은 ‘복수가 끝난 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더 가까웠습니다. 이 변화가 《뤼팽》을 단순한 괴도물보다 조금 더 인간적인 이야기로 만들어준다고 생각합니다.
《뤼팽》의 흥행이 납득이 되는 이유는 장르적 완성도보다 아산이라는 캐릭터의 흡인력 때문이라고 저는 봅니다. 오마르 시가 아산의 자신감과 균열을 동시에 가져가기 때문에 "저 사람 어떻게 되나" 싶어서 계속 다음 화를 누르게 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뤼팽 파트 1~3 다 봐야 하나요, 아니면 1만 봐도 되나요?
A. 파트 1만 봐도 완결성은 있습니다. 하지만 아산이라는 캐릭터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파트 3까지 보는 것이 낫습니다. 파트 1이 '복수'라면 파트 3은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에 가깝고, 세 파트를 이어서 보면 아산의 변화가 훨씬 선명하게 보입니다.
Q. 원작 아르센 뤼팽 소설을 알아야 드라마를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나요?
A. 몰라도 전혀 무관합니다. 드라마 속 아산 역시 소설을 읽고 처음 뤼팽을 접한 사람으로 설정되어 있어서, 시청자도 아산과 함께 처음부터 뤼팽식 사고방식을 배워가는 구조입니다. 원작을 안다면 복선 회수 장면에서 한 번 더 즐길 수 있는 정도입니다.
Q. 뤼팽이 정통 추리물인가요? 액션이 많은 편인가요?
A. 일반적으로 범죄 드라마라고 하면 치밀한 수사 과정을 기대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뤼팽이 그 기대와는 조금 다르다고 봅니다. 격투 액션보다는 심리전과 변장 중심이고, 수사보다는 아산의 계획 역전이 중심입니다. 현실적인 경찰 수사물보다는 '현대판 괴도극'에 가깝습니다.
결론
세 파트를 다 보고 제가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뤼팽》은 '얼마나 완벽하게 훔칠 수 있는가'에 대한 드라마가 아닙니다. 오히려 과거의 상처를 무기로 살아온 사람이 결국 그 무기를 내려놓을 수 있는가를 묻는 드라마라고 생각합니다. 《뤼팽》을 보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아산의 가족 이야기를 생각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변장과 반전이 재미있어서 다음 화를 눌렀지만, 마지막까지 보고 나니 오히려 기억에 남는 것은 아산이 혼자 감당하려 했던 책임과 그 과정에서 가족에게 생긴 상처였습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아산의 행동에는 지나치게 극적인 부분이 많습니다. 경찰을 그렇게 자주 따돌리고, 여러 신분을 자유롭게 오가며, 위기마다 놀라운 해결책을 찾아내는 모습은 현실의 범죄 수사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저는 이 점을 《뤼팽》의 가장 큰 장점이자 약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성보다 장르적 재미를 선택했기 때문에 속도감 있고 재미있지만, 반대로 비슷한 반전이 반복되면서 긴장감이 떨어지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세 파트를 모두 보고 나서 이 드라마를 기억하게 된 이유는 아산이 완벽한 영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는 똑똑하고 매력적이지만 실수하고, 가족을 사랑하지만 그 사랑 때문에 오히려 가족을 위험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바로 그런 모순이 있었기 때문에 저 역시 아산의 선택을 보면서 계속 판단하게 됐습니다. 결국 제가 《뤼팽》에서 가장 오래 기억하게 된 것은 화려한 변장이나 완벽한 작전이 아니라 ‘가족을 지킨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이 정말 최선인지, 과거의 상처를 바로잡는 일이 현재의 행복보다 중요한지 생각해보게 만든 작품이었습니다.
아산은 끝까지 뤼팽처럼 행동합니다. 변장하고, 속이고, 예상을 뒤집습니다. 하지만 그 능력이 가장 힘을 잃는 순간은 언제나 가족 앞에서입니다. 이 아이러니가 이 드라마를 단순한 오락 이상으로 기억하게 만들었습니다. 빠른 전개와 파리의 배경이 보기 좋은 드라마를 찾는다면 파트 1부터 시작해도 충분히 재미있게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아산이 왜 그렇게 움직이는지를 같이 따라가고 싶다면 파트 3까지 이어서 보시길 권합니다. 저처럼 단순히 머리를 쓰는 괴도 이야기를 기대했다가 가족과 과거에 대한 이야기까지 따라가게 되는 드라마를 좋아한다면 세 파트를 모두 이어서 보는 것도 추천하고 싶습니다. 완벽하게 짜인 범죄극을 기대하기보다는, 빠른 전개와 변장, 반전 속에 한 사람의 복수와 가족에 대한 고민이 함께 들어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뤼팽》의 매력을 더 잘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참고: Netflix 공식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