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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건교사 안은영이 학교에서 형형색색의 젤리와 마주하고 있는 장면

    이상한 드라마가 왜 이렇게 오래 생각날까요. 넷플릭스에서 《보건교사 안은영》을 처음 틀었을 때 저는 1화를 보다가 진짜로 멈칫했습니다. 보건실 선생님이 장난감 칼을 들고 알록달록한 젤리를 베는 장면이 나왔거든요. 그런데 6부작을 다 보고 난 뒤에는 젤리가 아니라 사람이 생각났습니다. 이 드라마가 결국 하려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직접 보니 조금 다르게 보였습니다.



    엄마의 눈으로 보니 젤리가 보였다

    《보건교사 안은영》에서 주인공 안은영이 가진 특별한 능력은 '투시력(clairvoyance)'에 가깝습니다. 여기서 투시력이란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지각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드라마에서는 이것이 '젤리'라는 형태로 시각화됩니다. 젤리는 사람의 욕망이나 억눌린 감정이 응어리진 존재로 묘사되는데, 이 설정이 처음에는 낯설었습니다.

    그런데 드라마를 보다 보니 제 일상에서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온 날, 평소와 똑같이 가방을 던지고 간식을 집어들었는데 어쩐지 눈빛이 달랐습니다. "오늘 학교 어땠어?" 물었더니 "그냥 평범했어"라는 대답이 돌아왔고요. 그런데 저는 계속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리고 저녁에 목욕을 시키다가 아이가 친구와 사소한 다툼이 있었다고 털어놨습니다.

    엄마의 눈이라는 게 꽤 비범합니다. 아이가 아무 말도 안 해도 표정의 결이 달라졌다는 걸 먼저 알아차리게 되더라고요. 안은영이 남들 눈에 안 보이는 젤리를 보는 것처럼, 저는 남들 눈에 안 띄는 아이의 감정 변화를 먼저 감지하는 셈입니다. 전혀 다른 이야기지만, 누군가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을 먼저 알아차리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안은영이 낯설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드라마에서 젤리는 단순한 괴물 캐릭터가 아닙니다. 학생들의 질투심, 어른들의 욕심, 억눌린 감정 같은 것들이 눈에 보이는 형태로 학교 곳곳에 달라붙어 있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이 점이 《보건교사 안은영》을 단순한 학원 판타지(school fantasy)와 구분짓는 부분입니다. 학원 판타지란 학교를 배경으로 초자연적 사건이 벌어지는 장르를 말하는데, 이 드라마는 판타지적 설정 뒤에 사람의 감정이라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숨겨놓았습니다.

    요약: 젤리는 판타지 소품이 아니라 사람의 감정과 욕망을 시각화한 장치였고, 그 설정이 엄마로서의 제 경험과 묘하게 겹쳤습니다.

     

    혼자 싸우기, 그 지치는 감각

    안은영이 젤리를 처리하는 방식을 보면서 솔직히 이건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이었습니다. 당당하고 멋진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었거든요. 은영은 귀찮아하고, 때로는 투덜거리고, 그러면서도 결국 장난감 칼을 들고 나섭니다. 아무도 부탁하지 않았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도요.

    이걸 보면서 집안일이 떠올랐습니다. 냉장고가 비면 장을 보고, 아이 준비물이 있으면 미리 챙기고, 학교 공지가 오면 읽고 처리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해냈다고 누가 칭찬해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안 하면 결국 제가 다시 하게 됩니다. 가끔은 '왜 나만 계속 이걸 신경 쓰고 있지?'라는 생각이 고개를 듭니다.

    드라마 속 은영의 처지가 딱 그랬습니다. 학교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은영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결국 은영이 해야 합니다. 이 구조가 판타지처럼 포장되어 있지만, 사실은 굉장히 현실적인 피로감을 담고 있었습니다.

    정유미 배우가 이 캐릭터를 표현한 방식이 정말 절묘했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정유미는 캐릭터의 내면 서사(internal narrative), 즉 말로 표현되지 않는 감정의 흐름을 표정과 눈빛만으로 전달합니다. 내면 서사란 대사 없이 배우의 몸짓과 표정으로 관객에게 전해지는 감정의 층위를 말합니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젤리를 베고, 한숨 한 번 내쉬고, 다음 장면에서는 또 보건실에 앉아 있는 그 장면들이 오래 남았습니다. 원작자 정세랑 작가도 정유미의 캐스팅에 대해 높은 만족감을 밝혔는데, 직접 보고 나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아래는 안은영 캐릭터가 기존 히어로물 주인공과 다른 점을 정리한 것입니다.

    • 능력을 자랑스러워하거나 즐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짐처럼 여깁니다.
    • 세상을 구하겠다는 사명감보다 '내가 안 하면 안 되니까'라는 현실적인 이유로 움직입니다.
    • 완벽하지 않고 귀찮아하지만, 결국 해야 할 일을 합니다.
    • 혼자 감당하다 지쳐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그려집니다.
    요약: 안은영이 피로하면서도 묵묵히 움직이는 모습은, 혼자 모든 걸 챙기다 지쳐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현실적인 감각입니다.

     

    따뜻한 판타지가 남긴 것

    이 드라마에서 제가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홍인표라는 인물이었습니다. 한문교사 홍인표(남주혁 분)는 처음에는 은영의 일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이상하게 봅니다. 그런데 함께 사건을 겪으면서 점차 은영의 곁에 서게 됩니다. 이 관계를 드라마에서는 공생 관계(symbiotic relationship)로 그립니다. 공생 관계란 서로 다른 존재가 각자의 결핍을 보완하며 함께 존재를 유지하는 관계를 말합니다.

    저도 예전에는 힘든 일이 생기면 혼자 해결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부탁하는 게 더 번거롭고, 설명하기도 귀찮았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탈진합니다. 요즘은 작은 일이라도 "이것 좀 맡아줘"라고 말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합니다. 막상 나눠보니 제가 혼자 다 짊어질 필요가 없었다는 걸 뒤늦게 알았습니다. 은영과 인표의 관계가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아쉬운 점도 솔직히 말하자면, 6부작이라는 분량 안에 판타지·미스터리·로맨스·사회 비평까지 욱여넣다 보니 중반 이후 이야기가 조금 산만해집니다. 새로운 설정과 인물이 계속 등장하면서 '이게 어디로 가는 거지?'라는 생각이 드는 구간이 있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불친절함이 이 드라마의 개성이기도 하지만, 처음 접하는 시청자에게는 허들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다 보고 난 뒤 남은 것은 명확했습니다. 정세랑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이야기"라는 취지로 말한 바 있습니다(출처: YES24 도서 정보 페이지). 제가 느낀 것도 정확히 그것이었습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사람 안에도 자기만의 젤리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그 사람에게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이 드라마를 보고 나서 오래 남았습니다.

    요약: 6부작의 짧은 분량이 아쉽기도 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싸우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비추는 시선이 이 드라마를 단순한 판타지 이상으로 만들어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보건교사 안은영은 원작 소설이 있나요?

    A. 있습니다. 정세랑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입니다. 드라마는 소설의 설정과 분위기를 바탕으로 하되, 각색 과정에서 일부 내용이 달라졌습니다. 원작 소설을 먼저 읽고 드라마를 보면 젤리의 의미와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Q.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 몇 부작이에요?

    A. 총 6부작입니다. 한 편당 러닝타임이 길지 않아 부담 없이 볼 수 있지만, 반대로 이야기가 압축된 느낌이라 다소 빠르게 전개된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제 경우에는 처음 두 편을 보고 감을 잡은 뒤 나머지를 이어서 봤습니다.

     

    Q.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던데 어떤 사람한테 맞는 드라마예요?

    A. 깔끔하게 정리되는 이야기나 전형적인 판타지를 좋아한다면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반면 잔잔하지만 독특한 분위기와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꽤 잘 맞습니다. 저는 처음에 당황했다가 결국 마지막까지 봤고, 보고 나서 며칠 동안 생각이 났습니다.

     

    Q. 정유미 안은영 연기가 진짜 잘 어울린다고 하던데 왜요?

    A. 안은영은 엉뚱하면서도 진지하고, 귀찮아하면서도 결국 해내는 인물입니다. 이 묘한 온도 차를 과장 없이 표현하는 게 핵심인데, 정유미 배우가 그걸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해냅니다. 대사보다 표정으로 더 많은 걸 전달하는 장면들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결론

    《보건교사 안은영》은 저에게 완벽한 드라마는 아니었습니다. 6부작이라는 분량 안에 여러 이야기를 담으려다 보니 중반 이후 이야기가 흐트러지는 느낌이 있었고,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세계관 진입 장벽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다 보고 나서 이 드라마가 오래 생각난 이유는, 젤리나 장난감 칼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혼자 무언가를 감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무도 몰라주는 일을 계속 해온 제 경험이 은영의 모습과 겹쳤고, 결국 누군가와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인표와의 관계를 통해 다시 확인했습니다. 이런 드라마가 한 편쯤 있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 당황스럽더라도 끝까지 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YES24 원작 소설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