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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런던을 배경으로 초능력을 가진 인물들이 서 있는 슈퍼셀 분위기 이미지

    넷플릭스에서 뭔가 틀어놓고 싶은데 마블은 이제 좀 질리고, 그렇다고 무거운 범죄 스릴러는 피곤한 날이 있습니다. 딱 그런 날 저는 《슈퍼셀(Supacell)》을 봤습니다. 첫 화가 끝날 즈음에는 이미 두 번째 화 재생 버튼을 누르고 있었습니다. 2024년 6월 넷플릭스가 공개한 영국 SF 드라마인데, 초능력을 소재로 삼으면서도 남런던의 현실적인 생활상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이 다른 히어로물과 확실히 달랐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영국 드라마라는 점 때문에 조금 망설였습니다. 미국 히어로물에 익숙하다 보니 규모가 작거나 밋밋하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한 편, 두 편 보다 보니 오히려 그 소박한 분위기가 인물들에게 더 집중하게 만들었습니다.



    현실성 — 초능력보다 먼저 생존이 있었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제가 가장 먼저 놀란 건 '아무도 영웅이 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배달 기사 로드니는 순간이동에 준하는 속도 능력을 얻지만, 처음 하는 일이 아들 학교 행사에 늦지 않으려는 것이었습니다. 간호사 사브리나는 손만 대면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지만, 그 힘을 병원에서 쓰는 순간 평범한 일상이 무너진다는 걸 알기 때문에 꾹 참습니다. 이 설정이 저한테는 오히려 훨씬 설득력 있게 다가왔습니다.

    이 드라마의 현실성은 단순히 남런던이라는 배경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가장 좋았습니다. 대부분의 히어로물에서는 능력을 얻는 순간 세상을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기는데, 《슈퍼셀》 속 인물들은 오히려 "이걸 숨겨야 하나?"부터 고민합니다. 초능력이 축복이라기보다 또 하나의 짐처럼 보였고, 그래서 오히려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실제로 드라마가 배경으로 삼은 남런던은 경제적 격차와 사회적 문제가 공존하는 지역입니다.영국 통계청(ONS) 자료에 따르면 런던 남부 일부 자치구는 잉글랜드 전체에서 소득 불평등 지수가 가장 높은 지역군에 속합니다(출처: 영국 통계청(ONS)). 드라마는 이 지역의 경제적 압박, 인종적 긴장, 범죄 조직과의 연루라는 구조적 문제를 초능력이라는 SF적 장치와 결합시킵니다. 여기서 '구조적 문제'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사회 시스템 자체의 불평등을 의미합니다. 마블이나 DC 유니버스에서는 주인공이 능력을 얻으면 곧바로 세계를 구하러 나서지만, 《슈퍼셀》의 인물들은 그보다 먼저 이달 월세를 걱정합니다.

    범죄 조직에 얽혀 있는 안드레의 이야기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그는 신체 불사(invulnerability) 능력, 즉 총탄이나 물리적 충격을 거의 받지 않는 강인한 신체를 갖게 됩니다. 그런데 그 능력은 그를 조직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위험한 존재로 만들고 가족까지 위협받게 합니다. 제가 직접 몇 편을 다시 돌려봤는데, 안드레가 능력을 쓸 때마다 표정에는 통쾌함보다 두려움이 먼저 보였습니다. 만약 그가 능력을 얻었다고 신나하거나 무적이 된 것처럼 행동했다면 이 캐릭터는 금방 평면적으로 느껴졌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과 불안이 먼저 드러났기 때문에, 초능력자가 아니라 현실에서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처럼 보였습니다. 그 디테일 하나가 이 드라마의 현실성을 상당 부분 책임지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주인공 마이클이 가진 능력은 타임슬립(time slip)입니다. 타임슬립이란 의지와 무관하게 다른 시간대로 이동하는 현상을 가리키며, 이 드라마에서는 마이클이 미래의 비극을 목격한 뒤 현재로 돌아와 그것을 막으려 하는 구조로 활용됩니다. 이 설정은 시간 루프물의 문법을 따르면서도, '미래를 바꾸려 할수록 새로운 변수가 생긴다'는 나비 효과적 전개를 가져가기 때문에 6부작이라는 짧은 분량 안에서도 긴장감이 꽤 오래 유지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시간여행 자체보다 '미래를 알고도 원하는 결과를 만들 수 없는 무력감'이 더 인상 깊었습니다. 미래를 봤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꽤 씁쓸하게 다가왔습니다.

    • 로드니: 극속 이동 능력 — 생계와 육아 사이에서 능력을 현실적 수단으로 사용
    • 사브리나: 치유 능력 —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능력을 공개하지 못하는 딜레마 묘사
    • 안드레: 신체 불사 — 조직 내 갈등이 심화되며 가족 보호와 생존 사이에서 갈등
    • 티저: 순간이동 — 능력 성장에 비례해 예측 불가한 위험에 노출
    • 마이클: 타임슬립 — 미래를 바꾸려는 시도가 새로운 변수를 만들어내는 핵심 서사 축
    요약: 《슈퍼셀》의 현실성은 남런던의 사회구조적 배경과 캐릭터별 생활 밀착형 설정이 초능력과 맞물리면서 만들어지며, 이것이 기존 히어로물과의 결정적 차이점입니다.

     

    캐릭터 분석 — 선도 악도 아닌, 그냥 사람

    드라마를 다 보고 나서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한 건 "이 사람들 중에 진짜 나쁜 사람이 있었나?"였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보통 SF 히어로물은 선명한 빌런이 있어야 이야기가 굴러가는데, 《슈퍼셀》은 그 구조를 거의 쓰지 않습니다. 대신 각 인물이 처한 상황이 그들을 특정 선택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으로 갈등을 만들어냅니다. 이것이 이 드라마를 단순한 능력자 배틀물이 아닌 인물 중심 서사극으로 만드는 핵심 요소라고 봅니다.

    캐릭터 서사 측면에서 이 드라마는 앙상블 드라마(ensemble drama)의 구조를 따릅니다. 앙상블 드라마란 단일 주인공이 아닌 여러 인물의 이야기를 동등한 비중으로 병렬 전개하는 방식을 뜻합니다. 6부작이라는 짧은 회차 안에 다섯 명의 주요 캐릭터를 담아야 하기 때문에 초반 두 편은 인물 관계를 파악하는 데 집중이 필요합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 첫 화에서 인물들이 자주 바뀌어 처음에는 '이게 같은 드라마 맞나?' 싶었는데, 3화부터 각 이야기의 실이 서로 엮이기 시작하면서 몰입도가 확 올라갔습니다.

    제작자 랩맨(Rapman)은 영국 힙합 씬 출신 감독으로, 거리와 커뮤니티에 대한 감각이 드라마 전반에 배어 있습니다. 인물들의 대사, 공간 묘사, 음악 선택이 남런던 흑인 커뮤니티의 문화적 질감을 구체적으로 담아냅니다. 이런 지역성과 정체성의 결합은 기존 미국 중심의 슈퍼히어로 내러티브와 분명히 다른 질감을 만들어냅니다.

     

    저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등장인물들이 특별해서 기억에 남았다기보다, 너무 평범해서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누구 하나 완벽하지 않고, 누구 하나 완전히 악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선택이 답답하면서도 쉽게 비난하기 어려웠습니다. 오히려 '내가 저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생각을 계속 하게 만들었습니다. 영국 영화 연구소(BFI)는 이러한 지역 밀착형 SF 드라마의 증가를 2020년대 영국 콘텐츠의 주요 흐름으로 분석한 바 있습니다(출처: 영국 영화 연구소(BFI)).

    시즌 마지막은 모든 걸 깔끔하게 해결하지 않습니다. 능력자들이 하나로 모이는 과정과 그들을 노리는 세력의 정체가 일부 드러나지만, 핵심 미스터리는 다음 시즌을 위해 남겨둡니다. 클리프행어(cliffhanger), 즉 결말을 미완으로 남겨 다음 시즌에 대한 기대를 끌어올리는 서사 기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방식입니다. 저는 이런 열린 결말을 싫어하는 편인데, 이상하게 《슈퍼셀》은 예외였습니다. 억지로 끝내는 것보다 다음 시즌을 기다리게 만드는 편이 오히려 이 작품에는 잘 어울린다고 느꼈습니다. 이 선택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다음이 궁금하다'는 감각을 유지하는 쪽이 더 나았다고 봅니다. 모든 의문을 6화 안에 억지로 해결했다면 오히려 납득하기 어려운 전개가 쌓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인물이 많다 보니 초반 두 편은 감정선을 따라가기보다 "이 사람이 누구였지?"를 계속 확인하게 됩니다. 또 능력이 각자 다르다 보니 설정 설명에 시간을 꽤 쓰는데, 이 부분은 조금만 더 간결했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약: 앙상블 드라마 구조와 지역 밀착형 인물 서사가 결합해, 선악 이분법 없이도 캐릭터 각각이 설득력 있는 선택을 내리는 것이 《슈퍼셀》의 가장 큰 강점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슈퍼셀 시즌 2는 나오나요?

    A. 시즌 1 결말이 다음 이야기를 강하게 암시하는 클리프행어로 끝나기 때문에 시즌 2에 대한 기대감이 높습니다. 현재까지 넷플릭스의 공식 시즌2 발표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넷플릭스 공식 채널을 통해 최신 소식을 확인하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Q. 마블이나 DC를 안 좋아해도 재미있게 볼 수 있나요?

    A. 오히려 그런 분들께 더 잘 맞을 수 있습니다. 《슈퍼셀》은 거대한 전투나 세계관 확장보다 캐릭터 개인의 감정과 생활 문제에 집중합니다. 초능력은 이야기의 도구일 뿐이고, 중심은 사람 사이의 갈등과 선택입니다.

     

    Q. 6부작이면 너무 짧지 않나요? 이야기가 제대로 마무리되나요?

    A. 짧은 분량 덕분에 불필요하게 늘어지는 구간이 없어서 오히려 속도감이 좋습니다. 다만 시즌 1은 모든 의문을 해결하기보다 다음 이야기를 향한 복선을 남기는 방식으로 끝납니다. 깔끔한 완결형 결말을 원한다면 다소 아쉬울 수 있지만, 속편 기대감은 충분히 만족스럽습니다.

     

    Q. 등장인물이 많아서 헷갈리지 않나요?

    A. 초반 1~2화는 인물이 자주 바뀌어 파악하는 데 집중이 필요합니다. 제 경우엔 각 인물의 능력과 직업을 메모해두면서 봤는데, 3화부터 이야기가 합쳐지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정리됩니다. 처음 두 편만 넘기면 이후는 흐름이 훨씬 편해집니다.

     

    결론

    《슈퍼셀》은 초능력이 있어도 삶이 갑자기 쉬워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드라마입니다. 히어로가 되기 전에 먼저 가족을 지켜야 하고, 능력을 쓰기 전에 먼저 오늘을 버텨야 하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6부작 내내 촘촘하게 쌓입니다. 화려한 액션보다 사람의 감정과 선택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작품을 찾고 있다면, 이 드라마는 그 기준에 충분히 답합니다.

    앙상블 구조, 지역 밀착형 서사, 사회적 현실성이라는 세 축이 맞물린 드라마는 생각보다 드뭅니다. 시즌 1을 다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다음이 궁금해질 텐데, 그게 이 드라마가 남긴 가장 솔직한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원래 초능력물이라면 액션부터 기대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슈퍼셀》은 액션보다 인물들이 하루를 버티는 모습이 더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화려한 전투보다 사람 이야기가 더 중요한 작품을 찾는다면 한 번쯤은 충분히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시원한 히어로 액션만 기대한다면 다소 느리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 차이를 알고 본다면 만족도가 훨씬 높을 작품입니다. 오랜만에 액션보다 사람이 더 기억에 남는 히어로물을 만난 것 같았습니다.

    참고: 넷플릭스 공식 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