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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처음에는 '또 청소년 범죄를 자극적으로 소비하는 드라마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몇 화를 보고 나니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범죄 장면보다 더 무서웠던 건 아이들이 범죄를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과정이었습니다. 보는 내내 긴장감보다 답답함이 더 크게 느껴졌고, '도대체 어른들은 어디 있었던 걸까?'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이게 단순히 "학생이 나쁜 짓을 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오지수와 배규리, 두 사람이 같은 범죄에 발을 들이면서도 그 이유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이 계속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왜 달랐는지, 그 차이가 무엇을 만들어냈는지를 짚어보고 싶었습니다.
오지수가 범죄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구조
오지수는 학교에서는 성실한 모범생입니다. 하지만 학교 밖에서는 부모에게 사실상 버려진 채 혼자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아이입니다. 월세와 생활비, 학비까지 모두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현실은 처음 봤을 때도 꽤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처음에는 지수가 불쌍하게만 보였습니다. 부모 없이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생존이 범죄를 설명해 줄 수는 있어도, 그 선택을 정당화할 수는 없었습니다. 특히 자신이 만든 시스템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위험에 처하는 장면에서는 더 이상 지수를 피해자로만 볼 수 없었습니다. 그 순간부터는 안타까움보다 답답함이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지수가 운영한 것은 성매매 여성들의 안전을 관리해 주는 경호 서비스였습니다. 직접 현장에 나서기보다 스마트폰과 위치 추적 시스템을 활용해 원격으로 통제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지수는 직접 현장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위치를 확인하고 상황을 관리하면서 스스로는 비교적 안전하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화면 너머에서 사람을 통제하는 방식 역시 결국 범죄의 일부였습니다. 지수는 이 구조 덕분에 처음에는 자신이 크게 위험하지 않다고 믿었지만, 그것이 오판이었습니다. 지수는 계속 "조금만 더 벌면 그만두겠다"고 스스로를 설득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돈을 벌수록 더 쉽게 그만둘 수 없게 됩니다. 저는 이 부분이 가장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잘못된 선택이라는 걸 알면서도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와서 멈출 수 있을까'라는 마음 때문에 계속 앞으로만 나아가는 모습이 실제 사람의 심리와 닮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지수는 돈을 모으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돈 때문에 평범한 일상은 점점 더 멀어집니다.저는 오히려 지수가 돈을 벌수록 더 불안해지는 모습이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불법으로 번 돈이 많아질수록 그만두기 어려워지는 아이러니가 계속 반복됩니다. 처음에는 '조금만 더'였지만, 결국 그 '조금'이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 부모의 유기로 인한 경제적 자립 압박이 범죄의 직접적 동기가 됨
- 비접촉형 운영 방식으로 초기에는 위험을 과소평가
- 수익이 커질수록 탈출이 어려워지는 몰입 상승 효과에 빠짐
배규리의 결핍은 왜 더 위험했나
배규리는 경제적으로 풍족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지수와 비교하면 물질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규리를 보면서 오히려 더 씁쓸했습니다. 규리가 느낀 결핍은 돈이 아니라 자유였고, 그 결핍이 어떤 면에서는 지수보다 더 과격한 선택으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지수가 더 안타까운 인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저는 오히려 규리가 인간수업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이라고 느꼈습니다. 지수는 자신의 행동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알고 끊임없이 불안해합니다. 반면 규리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쉽게 물러서지 않습니다. 오히려 문제가 커질수록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려는 모습이 여러 번 나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 사람은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더 큰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규리의 부모는 딸을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통제했습니다. 공부와 진로는 물론 일상까지 부모가 결정하려 했고, 규리는 스스로 선택할 기회를 거의 갖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 장면들을 보면서 부모의 관심도 지나치면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는 규리를 위해서라고 믿었겠지만, 정작 규리는 자신의 삶을 한 번도 살아보지 못했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범죄에 손을 댄 이유도 돈 때문이라기보다 '내 힘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규리는 지수의 불법 사업을 알게 된 순간, 협박 대신 공동 운영을 제안합니다. 저는 이 장면이 인간수업에서 가장 충격적인 순간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보통은 비밀을 알게 되면 신고하거나 협박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규리는 전혀 다른 선택을 합니다. 오히려 자신도 함께하겠다고 말합니다. 그 순간부터 규리는 단순한 학생이 아니라 스스로 범죄를 선택한 인물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장면 이후부터는 규리를 피해자로 보기 어려웠습니다. 이건 단순한 욕심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시험하고 싶은 욕망과 기존의 삶을 부수고 싶은 반항심이 결합된 행동이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인물 유형은 현실에서도 생각보다 드물지 않습니다. 통제가 심할수록 반발도 극단으로 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주변에서 직간접적으로 본 적이 있습니다. 결국 규리는 지수보다 훨씬 대담하고 위험한 선택을 반복합니다. 살아남기 위한 공포가 동기였던 지수와 달리, 규리는 위험 자체를 즐기는 모습까지 보입니다. 규리는 범죄를 생존 수단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시험하는 과정처럼 받아들이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더 위험하게 느껴졌습니다. 지수는 계속 멈추고 싶어 하지만, 규리는 새로운 문제가 생길 때마다 오히려 해결책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 차이가 후반부로 갈수록 두 사람을 완전히 다른 인물로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다만 저는 규리라는 인물이 너무 영리하게 그려진 점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실제 고등학생이라면 그렇게 빠르게 범죄 구조를 이해하고 대응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물론 극적인 전개를 위한 설정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 부분은 현실감이 조금 떨어진다고 느꼈습니다. 그럼에도 규리는 인간수업에서 가장 강렬한 인물이라는 점만큼은 분명했습니다.
두 사람의 결핍이 만든 공범 관계의 구조
지수와 규리는 출발점이 달랐지만, 결국 하나의 목표 지점에서 만납니다. 그것은 돈이었습니다. 생존을 위해 돈이 필요한 지수와, 독립을 증명하기 위해 돈이 필요한 규리. 원인은 전혀 달랐지만 목표가 같았기 때문에 두 사람의 공범 관계는 생각보다 단단하게 작동했습니다. 이 관계는 드라마에서 단순한 이해관계 결합 이상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이용하면서도 의지했고, 서로의 약점을 알면서도 쉽게 배신하지 못했습니다. 이른바 '상호 의존적 공모 관계(mutually dependent conspiracy)'라고 볼 수 있습니다. 상호 의존적 공모란 공동의 비밀을 공유함으로써 어느 한쪽이 이탈할 경우 양쪽 모두 피해를 입게 되는 구조, 즉 서로가 서로의 인질이 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솔직히 이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지수는 처음에 규리를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규리 없이는 이 상황을 버티기 어렵다는 걸 알게 됩니다. 제가 직접 본 이 두 인물의 관계는 우정도 사랑도 아닌, 현실이 만들어낸 어쩔 수 없는 연대에 가깝습니다. 여기에 민희, 기태, 조직폭력배, 경찰까지 얽히면서 지수의 원격 통제 시스템은 점점 균열이 생깁니다. 처음에는 시스템이 사람을 통제했지만, 나중에는 사람이 시스템에 통제당하는 역전 현상이 일어납니다. 국내 청소년 범죄 관련 통계를 보면, 경제적 취약 계층 청소년일수록 초기 범죄에 노출될 위험이 높다는 점이 일관되게 나타납니다(출처: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열린 결말이 남긴 질문, 사회가 답해야 할 것
인간수업의 마지막은 두 사람이 피투성이가 된 채 도주를 시도하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살아남았는지, 체포되었는지, 끝내 비극으로 마무리되었는지는 직접 보여주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이 열린 결말이 조금 불친절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것이 훨씬 정직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품은 청소년 범죄를 개인의 일탈로만 설명하지 않습니다. 부모의 부재, 경제적 취약성, 사회 안전망의 공백, 어른들의 무관심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점을 일관되게 짚습니다. 이것을 범죄학에서는 '사회적 통제 이론(social control theory)'의 관점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통제 이론이란 개인을 사회에 묶어두는 유대, 즉 가정·학교·또래 집단과의 건강한 연결이 약해질수록 일탈 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이론입니다. 지수는 살기 위해 범죄를 시작했고, 규리는 자유롭게 살기 위해 범죄에 뛰어들었습니다. 원인은 달랐지만 두 사람 모두 잘못된 방법을 선택했고, 그 선택은 자신들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삶까지 무너뜨렸습니다. 보는 내내 씁쓸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돈에 대한 욕망 자체를 탓하는 게 아니라,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범죄의 힘을 빌렸다는 사실이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 열린 결말은 "잘못된 선택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더 강하게 전달함
- 청소년 범죄를 개인 일탈이 아닌 구조적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을 제시함
- 지수와 규리의 대비를 통해 결핍의 형태는 달라도 비극의 결과는 같다는 것을 보여줌
인간수업은 보고 나서 금방 잊히는 드라마가 아닙니다. 오지수와 배규리라는 두 인물이 각각 어떤 결핍을 안고 있었는지를 이해하고 나면, 그들의 선택이 단순한 악의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렇다고 그 선택이 옳았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잘못된 방법은 잘못된 방법입니다. 다만, 왜 그 선택을 했는지를 사회가 함께 질문해야 한다는 것, 그게 이 드라마가 남긴 가장 중요한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안 보셨다면 단순한 범죄 스릴러로 접근하기보다는, 두 인물의 결핍이 어떻게 엇갈리고 겹치는지에 집중해서 보시기를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