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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처음에 인간수업을 그냥 자극적인 청소년 범죄물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이게 단순히 "학생이 나쁜 짓을 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오지수와 배규리, 두 사람이 같은 범죄에 발을 들이면서도 그 이유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이 계속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왜 달랐는지, 그 차이가 무엇을 만들어냈는지를 짚어보고 싶었습니다.
오지수가 범죄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구조
인간수업에서 오지수는 학교에서는 성실한 모범생입니다. 그런데 그 이면에는 부모에게 사실상 유기된 채 홀로 생존을 책임져야 하는 현실이 있습니다. 월세, 생활비, 학비까지 전부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이 설정을 처음 접했을 때 꽤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단순한 설정이 아니라 실제로 이런 처지에 놓인 청소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먼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지수가 운영한 것은 성매매 여성들의 안전을 관리해 주는 경호 서비스였습니다. 직접 현장에 나서기보다 스마트폰과 위치 추적 시스템을 활용해 원격으로 통제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른바 '비접촉형 범죄 운영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비접촉형 범죄 운영이란 직접적인 물리적 가담 없이 정보통신 수단을 통해 범죄 행위를 기획·관리하는 방식을 뜻합니다. 지수는 이 구조 덕분에 처음에는 자신이 크게 위험하지 않다고 믿었지만, 그것이 오판이었습니다. 지수에게 돈은 생존의 수단이었습니다. "조금만 모으면 그만두겠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불법으로 번 돈이 커질수록 빠져나오는 길은 오히려 좁아졌습니다. 이것은 범죄심리학에서 말하는 '몰입 상승 효과(escalation of commitment)'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몰입 상승 효과란 잘못된 선택에 이미 투자한 것이 많을수록 그 선택을 철회하지 못하고 계속 깊이 빠져드는 심리적 현상을 말합니다.
- 부모의 유기로 인한 경제적 자립 압박이 범죄의 직접적 동기가 됨
- 비접촉형 운영 방식으로 초기에는 위험을 과소평가
- 수익이 커질수록 탈출이 어려워지는 몰입 상승 효과에 빠짐
배규리의 결핍은 왜 더 위험했나
배규리는 경제적으로 풍족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지수와 비교하면 물질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규리를 보면서 오히려 더 씁쓸했습니다. 규리가 느낀 결핍은 돈이 아니라 자유였고, 그 결핍이 어떤 면에서는 지수보다 더 과격한 선택으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규리의 부모는 딸을 완벽하게 통제했습니다. 자녀를 하나의 '완성된 작품'으로 만들려는 집착적 양육 방식, 이른바 '헬리콥터 페어런팅(helicopter parenting)'의 극단적 형태에 해당합니다. 헬리콥터 페어런팅이란 자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모든 선택에 개입하는 과잉 보호형 양육을 의미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규리가 원한 것은 단순히 돈이 아니었습니다. 부모의 손을 빌리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규리는 지수의 불법 사업을 알게 된 순간, 협박 대신 공동 운영을 제안합니다. 이건 단순한 욕심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시험하고 싶은 욕망과 기존의 삶을 부수고 싶은 반항심이 결합된 행동이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인물 유형은 현실에서도 생각보다 드물지 않습니다. 통제가 심할수록 반발도 극단으로 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주변에서 직간접적으로 본 적이 있습니다. 결국 규리는 지수보다 훨씬 대담하고 위험한 선택을 반복합니다. 살아남기 위한 공포가 동기였던 지수와 달리, 규리는 위험 자체를 즐기는 모습까지 보입니다. 이는 위험 감수 행동(risk-taking behavior)이 욕구 결핍과 밀접하게 연결된다는 심리학적 관점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위험 감수 행동이란 부정적 결과를 인지하면서도 자극이나 보상을 위해 위험을 의도적으로 선택하는 행동 패턴을 뜻합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두 사람의 결핍이 만든 공범 관계의 구조
지수와 규리는 출발점이 달랐지만, 결국 하나의 목표 지점에서 만납니다. 그것은 돈이었습니다. 생존을 위해 돈이 필요한 지수와, 독립을 증명하기 위해 돈이 필요한 규리. 원인은 전혀 달랐지만 목표가 같았기 때문에 두 사람의 공범 관계는 생각보다 단단하게 작동했습니다. 이 관계는 드라마에서 단순한 이해관계 결합 이상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이용하면서도 의지했고, 서로의 약점을 알면서도 쉽게 배신하지 못했습니다. 이른바 '상호 의존적 공모 관계(mutually dependent conspiracy)'라고 볼 수 있습니다. 상호 의존적 공모란 공동의 비밀을 공유함으로써 어느 한쪽이 이탈할 경우 양쪽 모두 피해를 입게 되는 구조, 즉 서로가 서로의 인질이 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솔직히 이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지수는 처음에 규리를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규리 없이는 이 상황을 버티기 어렵다는 걸 알게 됩니다. 제가 직접 본 이 두 인물의 관계는 우정도 사랑도 아닌, 현실이 만들어낸 어쩔 수 없는 연대에 가깝습니다. 여기에 민희, 기태, 조직폭력배, 경찰까지 얽히면서 지수의 원격 통제 시스템은 점점 균열이 생깁니다. 처음에는 시스템이 사람을 통제했지만, 나중에는 사람이 시스템에 통제당하는 역전 현상이 일어납니다. 국내 청소년 범죄 관련 통계를 보면, 경제적 취약 계층 청소년일수록 초기 범죄에 노출될 위험이 높다는 점이 일관되게 나타납니다(출처: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열린 결말이 남긴 질문, 사회가 답해야 할 것
인간수업의 마지막은 두 사람이 피투성이가 된 채 도주를 시도하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살아남았는지, 체포되었는지, 끝내 비극으로 마무리되었는지는 직접 보여주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이 열린 결말이 조금 불친절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것이 훨씬 정직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품은 청소년 범죄를 개인의 일탈로만 설명하지 않습니다. 부모의 부재, 경제적 취약성, 사회 안전망의 공백, 어른들의 무관심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점을 일관되게 짚습니다. 이것을 범죄학에서는 '사회적 통제 이론(social control theory)'의 관점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통제 이론이란 개인을 사회에 묶어두는 유대, 즉 가정·학교·또래 집단과의 건강한 연결이 약해질수록 일탈 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이론입니다. 지수는 살기 위해 범죄를 시작했고, 규리는 자유롭게 살기 위해 범죄에 뛰어들었습니다. 원인은 달랐지만 두 사람 모두 잘못된 방법을 선택했고, 그 선택은 자신들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삶까지 무너뜨렸습니다. 보는 내내 씁쓸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돈에 대한 욕망 자체를 탓하는 게 아니라,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범죄의 힘을 빌렸다는 사실이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 열린 결말은 "잘못된 선택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더 강하게 전달함
- 청소년 범죄를 개인 일탈이 아닌 구조적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을 제시함
- 지수와 규리의 대비를 통해 결핍의 형태는 달라도 비극의 결과는 같다는 것을 보여줌
인간수업은 보고 나서 금방 잊히는 드라마가 아닙니다. 오지수와 배규리라는 두 인물이 각각 어떤 결핍을 안고 있었는지를 이해하고 나면, 그들의 선택이 단순한 악의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렇다고 그 선택이 옳았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잘못된 방법은 잘못된 방법입니다. 다만, 왜 그 선택을 했는지를 사회가 함께 질문해야 한다는 것, 그게 이 드라마가 남긴 가장 중요한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안 보셨다면 단순한 범죄 스릴러로 접근하기보다는, 두 인물의 결핍이 어떻게 엇갈리고 겹치는지에 집중해서 보시기를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