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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이 드라마를 처음 볼 때 별 기대가 없었습니다. '첫사랑 재회'라는 소재가 워낙 익숙하다 보니, 또 비슷한 멜로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9부작을 다 보고 난 뒤 가장 오래 머릿속에 남은 건 야에와 하루미치의 사랑이 아니라 제 자신의 지나간 시간이었습니다. 《퍼스트 러브 하츠코이》는 첫사랑 이야기를 빌려 지나간 나를 다시 마주하게 만드는 드라마입니다. 저는 처음부터 이런 감정을 예상했던 것은 아닙니다. 첫사랑이라는 소재를 생각하면 보통 설레거나 애틋한 이야기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이 드라마를 다 보고 나서는 오히려 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오래전의 시간들을 하나씩 떠올리게 됐습니다. 특별히 대단한 사건이 있었던 시절이 아니라, 당시에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순간들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말 한마디나 선택 하나가 지금의 저를 만드는 데 영향을 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드라마가 끝난 뒤에도 야에와 하루미치의 이야기가 쉽게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첫사랑 재회, 낭만인가 작위인가
이 드라마를 처음 보면 '20년이 지나도 이어지는 운명적인 사랑 이야기인가?'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저도 초반에는 거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특히 두 사람이 다시 만나는 장면을 보면서 '정말 이런 일이 현실에서도 가능할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20년이라는 시간은 너무 길고, 그동안 두 사람 모두 다른 삶을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첫사랑이라는 기억만으로 그 긴 시간을 건너뛰는 것이 조금은 낭만적으로 포장된 설정처럼 느껴졌습니다. 실제로 작품의 구성 자체가 그 감상을 유도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처음의 의문이 조금씩 사라졌습니다. 이 드라마는 '20년 동안 한 사람만 기다렸다'는 식으로 사랑을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 모두 다른 사람을 만나고, 다른 선택을 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두 사람의 재회가 단순히 과거로 돌아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각자의 시간을 지나온 사람들이 다시 서로를 바라보는 과정처럼 느껴졌습니다.
눈 내리는 삿포로, 우타다 히카루의 음악,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는 비선형 서술(non-linear narrative) — 여기서 비선형 서술이란 시간 순서를 따르지 않고 과거와 현재를 번갈아 보여주며 이야기를 조각처럼 맞춰가는 구성 방식을 말합니다. 이 기법 덕분에 시청자는 두 사람이 왜 헤어졌는지를 서서히 알게 되면서 감정이 자연스럽게 쌓입니다. 다만 저는 이 방식을 처음부터 편하게 받아들인 것은 아닙니다. 현재의 장면을 보다가 갑자기 과거로 넘어가고,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방식이라 초반에는 '지금이 언제지?' 하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몇 편을 지나고 나니 오히려 그 점이 이 드라마의 장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청자가 야에와 하루미치의 기억을 한꺼번에 전달받는 것이 아니라, 잊고 있던 장면을 하나씩 발견하는 것처럼 이야기를 따라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처음에 이 구성이 조금 작위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20년이 지나 우연히 택시 안에서 재회한다는 설정, 야에의 기억 손상이라는 장치, 음악이 과거를 소환하는 방식까지 — 하나하나 따져보면 현실에서 일어나기 어려운 조합입니다. "이건 너무 드라마적이다"라고 생각하는 분들의 시각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9편을 보면서 느낀 건 달랐습니다. 이 비현실성이 오히려 작품의 핵심을 건드린다는 것입니다. 넷플릭스 공식 소개에 따르면 이 시리즈는 1999년 발표된 우타다 히카루의 'First Love'와 2018년의 'Hatsukoi'에서 직접 영감을 받은 오리지널 작품입니다(출처: Netflix 공식 소개). 두 곡 모두 첫사랑을 노래하지만 발표 시점이 19년 차이납니다. 그 간격 자체가 드라마의 주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저는 이 작품에서 음악이 단순히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배경음악이 아니라는 점도 좋았습니다. 오래된 노래를 우연히 들었을 때 그 노래 자체보다 그 시절의 장소나 사람,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가 먼저 떠오르는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에에게 음악이 기억을 여는 열쇠처럼 사용되는 것이 과장된 설정처럼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에게도 이런 노래가 하나쯤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야에를 연기한 미츠시마 히카리는 현재와 과거 두 시점 모두에서 설득력 있는 연기를 보여줍니다. 특히 현재의 야에가 하루미치를 처음엔 알아보지 못하는 장면, 저는 그 장면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느꼈습니다. 하루미치에게는 야에가 여전히 선명한 기억이지만, 야에에게 그 시절은 오래 묻혀 있던 것입니다. 기억의 비대칭, 이 설정 하나가 두 사람의 관계를 단순한 운명론으로 흘러가지 않게 잡아줍니다.
제가 이 부분에서 특히 공감했던 건 저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래전 사진을 보면서 "그때 이런 걸 입고 있었나" 하고 낯선 느낌이 들 때, 기억은 있는데 그때의 감정은 흐릿할 때가 있었습니다. 사진을 보면 분명히 그때의 장소와 사람은 기억나는데, 정작 그날 내가 어떤 기분이었는지는 잘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분명 중요했던 일이었는데 지금의 나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기억이 되어 있기도 합니다. 반대로 당시에는 그냥 지나쳤던 말이나 장면이 시간이 지나고 나서 이상하게 오래 기억에 남아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야에가 자신의 과거를 조금씩 되찾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기억한다는 것과 그때의 나를 온전히 기억하는 것은 다른 일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야에의 혼란이 극적 장치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감각으로 느껴진 이유입니다.
시간과 기억, 그리고 결말이 남긴 것
이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하게 쓰이는 장치는 '프루스트 효과(Proust Effect)'입니다. 8화 제목에도 직접 등장하는 이 개념은, 특정 감각 — 음악이나 냄새, 장소 — 이 오래된 기억을 불러내는 현상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오래된 노래를 듣는 순간 그 시절의 감정 전체가 밀려오는 경험입니다. 야에가 과거를 되찾는 방식이 바로 이 원리를 따릅니다. 특정 물건, 우타다 히카루의 음악, 삿포로의 풍경이 기억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됩니다.
일반적으로 '기억을 잃는 설정'은 드라마에서 지나치게 소비되는 클리셰라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저도 초반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보면서 느낀 건, 이 작품이 기억 상실 자체를 갈등의 도구로 쓰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야에는 기억을 잃었기 때문에 불행한 것이 아니라, 기억이 흐려진 채로 살아온 20년 자체가 이미 그녀의 현재이기 때문입니다. 그 차이가 꽤 결정적입니다.
한 가지 비판적으로 보자면, 야에와 하루미치의 재회 과정에서 주변 인물들 — 특히 하루미치의 현재 파트너인 츠네미 — 의 감정이 상대적으로 얕게 다뤄진다는 점은 아쉬웠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조금 불편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주인공 두 사람의 감정이 워낙 크게 그려지다 보니, 그들의 재회가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상대적으로 작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현실에서 오래전 사랑했던 사람을 다시 만나는 일은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닐 텐데, 드라마는 그 복잡한 관계를 상당 부분 주인공들의 감정선 뒤로 밀어놓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완전히 현실적인 연애 드라마라고 평가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히려 이 작품이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첫사랑과 기억'이라는 감정을 최대한 아름답게 보여주는 쪽을 선택했다고 봅니다. 그 선택 덕분에 감정적으로는 강하지만, 현실적인 관계의 복잡함이라는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주인공들의 감정에 집중하는 만큼 주변인의 상처는 뒤로 밀립니다.
결말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결말을 '첫사랑이 이루어졌다'는 식으로만 해석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오히려 좋았던 것은 두 사람이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만약 두 사람이 20년 전의 감정만 확인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였다면 저는 조금 아쉬웠을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이 '지금 이 모습으로' 서로를 다시 선택한다는 것, 거기서 감정의 무게가 달라진다고 봤습니다. 야에와 하루미치는 20년 전의 두 사람으로 돌아간 것이 아닙니다. 야에는 이혼을 경험한 어머니이고, 하루미치는 항공자위대를 거쳐 자신의 삶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두 사람 모두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일을 겪었고, 그 시간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의 재회는 '예전으로 돌아가자'는 의미보다는 '지금의 우리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제가 이 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건 사실 두 사람의 관계보다 제 자신의 선택들이었습니다. 지금의 저를 만든 시간들 중에 당시엔 의미를 몰랐던 순간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 시간이 잘못됐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그냥 그때의 제가 할 수 있는 선택이었던 것들. 이 드라마는 그 감각을 건드렸습니다. 저는 그래서 이 작품의 핵심이 단순히 '첫사랑을 다시 만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과거의 나를 어떻게 바라보게 되는가에 더 가까운 이야기라고 느꼈습니다. 야에가 하루미치를 다시 기억해가는 과정은 결국 자신이 잊고 있던 과거와 다시 마주하는 과정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이 드라마를 보고 나서 오래전의 선택들을 떠올리게 됐고, 그때의 나를 지금의 기준으로만 판단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살다 보면 예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지만, 사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때의 선택을 다시 할 수도 없고, 이미 지나간 관계를 똑같은 모습으로 되돌릴 수도 없습니다. 결국 할 수 있는 것은 그때의 나를 부정하지 않고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드라마의 결말을 첫사랑의 성공보다 '지나간 시간을 받아들이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로 봤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퍼스트 러브 하츠코이 결말에서 야에와 하루미치는 어떻게 되나요?
A. 두 사람은 결국 다시 서로를 선택합니다. 다만 이를 '첫사랑이 이루어진 해피엔딩'으로만 보면 조금 아쉬울 수 있습니다. 20년간 각자의 삶을 살아온 현재의 두 사람이 과거를 인정하고 지금 이 모습으로 서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결말의 핵심입니다.
Q. 야에가 기억을 잃은 이유가 뭔가요?
A. 드라마 중반 이후 밝혀지는 사고가 원인입니다. 단순한 부상이 아니라 야에의 삶 자체를 바꾼 사건으로, 하루미치와 함께했던 기억도 이 과정에서 흐려집니다. 이 장치를 극적 클리셰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야에가 과거를 잃은 채 20년을 살아온 것 자체가 이미 그녀의 현재라는 점에서 단순한 기억 상실 설정과는 결이 다릅니다.
Q. 전개가 느리다는데 끝까지 볼 만한가요?
A. 빠른 사건 전개를 기대하면 초반이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처음 몇 화를 볼 때는 조금 답답했습니다. 요즘 드라마처럼 초반부터 큰 사건이 연달아 터지는 방식이 아니어서 '이 이야기가 어디로 가는 걸까?'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보고 나니 그 느린 호흡이 오히려 필요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사건의 결과가 아니라 두 사람이 지나온 시간을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잔잔한 감성 드라마를 즐기는 편이라면 9화 전체가 하나의 퍼즐처럼 맞춰지는 경험 자체가 만족스러울 가능성이 높습니다.
Q. 우타다 히카루 음악을 몰라도 즐길 수 있나요?
A. 충분히 즐길 수 있습니다. 음악이 이야기의 매개체 역할을 하기 때문에 드라마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음악과 감정이 연결됩니다. 다만 'First Love'와 'Hatsukoi'를 미리 들어보고 시작하면 드라마가 왜 그 두 곡을 선택했는지 더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결론
《퍼스트 러브 하츠코이》를 다 보고 나서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한 건 "내가 가장 나다웠던 시절은 언제였을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첫사랑이 누구였는지가 아니라, 그 시절의 저는 무엇을 꿈꾸고 무엇을 당연하게 여겼는지. 지금의 저는 그때의 저와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동안 좋았던 일도 있었고, 후회되는 선택도 있었고, 당시에는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지금의 기준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순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보고 나니 과거의 나를 지금의 기준으로만 판단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의 나는 그때 할 수 있는 선택을 했고, 그 선택들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된 것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이 드라마를 보고 '첫사랑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예전의 나를 한 번쯤 다시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습니다. 그때의 내가 무엇을 좋아했고, 무엇을 두려워했고, 어떤 미래를 상상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어쩌면 《퍼스트 러브 하츠코이》가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랑 이야기를 보고 시작했지만 결국 내 인생의 한 페이지를 돌아보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한 편이 그 질문을 꺼내줬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오래 기억에 남을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전개가 느리고, 주변 인물들의 감정이 충분히 다뤄지지 않는다는 아쉬움은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감성적인 일본 로맨스 드라마를 찾고 있다면, 혹은 지나간 시간을 조용히 돌아볼 여유가 있다면 한 번쯤 볼 만한 작품입니다. 1화를 보고 분위기가 맞으면 끝까지 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