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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하이라키를 틀기 전까지 그냥 평범한 학원 로맨스물이겠거니 생각했습니다. 화려한 교복, 잘생긴 배우들, 어디선가 본 듯한 재벌 학교 설정. 그런데 막상 보기 시작하니 웃으면서 볼 수 있는 드라마가 아니었습니다. 보는 내내 1990년대 후반 저의 학창 시절이 자꾸 겹쳐 보였고, 마지막 회를 끄고 나서 자연스럽게 아이 방으로 발걸음이 향했습니다. 이 드라마가 단순히 청소년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직접 보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학창 시절을 소환한 권력 구조의 민낯
넷플릭스 시리즈 하이라키는 대한민국 최상위 0.01% 자녀들이 다니는 조신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합니다. 전학생 강하가 이 학교에 들어오면서 기존의 서열 구조가 흔들리기 시작하는데, 드라마가 진짜 말하고 싶었던 건 그 서열 자체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서 '서열 구조'란 단순히 성적순이나 인기 순위가 아닙니다. 집안의 자본과 사회적 영향력이 학교 안에서도 그대로 재현되는 구조, 즉 계층 재생산(social reproduction)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부모가 가진 권력이 자녀의 학교생활에서도 고스란히 작동한다는 겁니다. 피해자는 침묵하고 주변은 외면하는 이 구조가 드라마 내내 반복됩니다.
제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도 이런 분위기가 없었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재벌 자녀는 없었지만, 반에서 '힘 있는 아이' 옆에는 항상 무리가 생겼고, 그 무리에서 밀려난 아이는 조용히 혼자가 됐습니다. 저도 튀면 표적이 될까봐 '적당히 웃고 적당히 맞춰 주는' 방식으로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게 현명했던 건지, 비겁했던 건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드라마 속 명장면 중 하나인 신입생 환영 파티의 '진실게임' 장면은 단순한 파티가 아니라 권력을 공개적으로 확인하는 의식에 가깝습니다. 강하가 그 자리에서 예상 밖의 행동을 하며 분위기를 뒤집는 순간, 저는 그 긴장감보다 '저런 자리에서 아무 말 못 하고 있었을 나'를 더 먼저 떠올렸습니다.
- 조신고의 서열은 성적이 아닌 집안 배경과 영향력으로 결정됨
- 피해자의 침묵과 주변의 방관이 구조를 유지시키는 핵심 기제
- 강하의 등장은 단순한 전학생 서사가 아닌 복수를 위한 치밀한 계획
- 드라마의 긴장감은 매회 새로운 단서를 제시하는 미스터리 구조에서 비롯됨
부모 시선으로 다시 읽히는 장면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등장인물들의 감정보다 그 아이들을 그렇게 만든 어른들이 더 눈에 들어왔거든요. 지금 저는 초등학생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이 도움을 요청할 어른이 없는 장면들이 유독 마음에 걸렸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상황을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방관자 효과란, 주변에 사람이 많을수록 오히려 개인이 도움을 주려는 책임감이 분산되어 아무도 나서지 않게 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드라마 속 학생들이 피해를 목격하면서도 외면하는 이유가 단순한 나쁜 심성 때문이 아니라 이 구조 때문이라는 점이, 보면서 더 답답하게 느껴진 이유였습니다.
출처: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에 따르면 학교폭력을 경험한 아이들 중 상당수는 '말해도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아서'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드라마 속 아이들이 침묵하는 구조가 허구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저는 요즘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꼭 묻습니다. "오늘은 누구랑 놀았어?", "속상한 일은 없었어?" 이 질문들이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아이들 사이의 관계가 생각보다 훨씬 큰 영향을 준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정재이와 강하가 서로 마음을 열기 시작하는 장면에서 두 배우의 섬세한 감정 연기가 돋보였는데, 저는 그 장면보다 그 옆에서 아무것도 몰랐을 어른들이 더 먼저 생각났습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계속 이 질문이 맴돌았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진짜 물려줘야 할 게 뭘까. 좋은 학교, 좋은 성적, 좋은 배경이 아니라, 잘못했을 때 인정할 줄 알고 약한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태도. 드라마 속 어른들이 가장 못한 것이 바로 그 부분이었습니다.
결말이 씁쓸했던 이유, 그리고 드라마의 한계
후반부에서 강하가 조신고에 온 진짜 이유와 과거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면서, 흩어져 있던 복선들이 하나로 수렴됩니다. 드라마 용어로 '내러티브 수렴(narrative convergence)'이라고 하는데, 쉽게 말해 매회 조금씩 흘려온 단서들이 한 장면에서 퍼즐처럼 맞춰지는 구조입니다. 그 순간의 쾌감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말은 통쾌하지 않았습니다. 진실은 드러났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상처를 입었고, 학교를 지탱하던 권력 구조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오히려 현실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진실이 밝혀진다고 해서 구조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는 것, 학창 시절을 지나온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는 부분입니다.
출처: 환경정의재단이 아니라, 교육부가 발표한 2023년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학교폭력 피해 응답률은 여전히 감소하지 않고 있으며, 피해 학생이 도움을 받지 못하는 비율도 적지 않습니다(출처: 교육부). 드라마가 과장된 설정처럼 보여도 그 밑에 깔린 감정은 과장이 아닙니다.
아쉬운 점도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몇몇 인물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습니다. 사건 전개 속도가 빨라서 감정이 따라가지 못하는 순간이 있었고, 마지막 회는 다소 급하게 마무리된 느낌이었습니다. 캐릭터의 심리적 동기, 즉 왜 그 선택을 했는지에 대한 내면 묘사가 더 깊었다면 훨씬 오래 남는 드라마가 됐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보게 된 건, 이 드라마가 계속 저한테 질문을 던졌기 때문입니다. "그때 너는 어떤 학생이었어?" 저는 직접 괴롭히지 않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이라키를 보면서 그 시절의 침묵이 다시 마음 한편을 불편하게 건드렸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하이라키 줄거리 스포 없이 봐도 재미있나요?
A. 네, 미스터리 구조라 매회 단서를 쌓아가는 방식이라 스포 없이 보는 게 훨씬 재미있습니다. 사전 정보 없이 첫 화부터 시작하면 강하가 조신고에 온 이유가 드러나는 순간의 반전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처음부터 보시길 추천합니다.
Q. 하이라키 시즌2는 있나요?
A. 제가 글을 쓰는 시점 기준으로 시즌2에 대한 공식 발표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결말이 여운을 남기는 방식이라 시즌2에 대한 기대가 많지만, 현재로서는 넷플릭스 공식 채널을 직접 확인하시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Q. 하이라키 몇 부작이고 다 보는 데 얼마나 걸리나요?
A. 시즌1 기준 총 7화 구성입니다. 각 화의 러닝타임이 40분에서 50분 사이라 주말 하루에 몰아 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중반부부터 전개가 빨라지면서 멈추기가 어려워지는 구조라, 시간 여유 있을 때 시작하시는 걸 권합니다.
Q. 하이라키, 어른이 봐도 공감이 되나요?
A. 제 경험상 오히려 학창 시절을 지나온 어른들에게 더 많이 걸리는 드라마입니다. 서열 구조, 침묵의 공모, 부모의 기대라는 주제가 학창 시절 기억을 자꾸 소환합니다. 자녀를 키우는 분들이라면 아이와 함께 보고 이야기 나눠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결론
하이라키는 완벽한 드라마는 아닙니다. 인물의 심리 묘사가 아쉬운 부분도 있었고, 마지막 회의 전개가 다소 급했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를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하나입니다. 화면이 꺼진 뒤에도 질문이 남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그때 나는 어떤 학생이었을까.", "지금 내 아이는 학교에서 혼자 참고 있는 일이 없을까." 이런 질문을 자연스럽게 던지게 만드는 드라마라면, 단순한 학원 미스터리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창 시절을 지나온 분이라면, 특히 지금 자녀를 키우고 있다면 한번 보시길 권합니다. 보고 나서 아이와 학교 이야기를 나눠보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