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진짜 자신을 보여줄 수 없다면, 그 사랑은 진짜 사랑일까요? 넷플릭스 블랙 도브를 보고 나서 제가 제일 먼저 떠올린 건 스파이 액션이 아니라, 오히려 아이를 재우고 혼자 부엌에 앉아 있던 어느 밤이었습니다. 키이라 나이틀리와 벤 위쇼 주연의 이 6부작 영국 드라마는, 겉으로 보면 첩보 스릴러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꽤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이중생활이라는 설정이 낯설지 않았던 이유블랙 도브의 주인공 헬렌 웹은 정치인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겉으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10년째 비밀 첩보 조직 블랙 도브스의 스파이로 활동하며 남편의 정치적 정보를 빼내고 있습니다. 이른바 이중생활(double life)이라는 설정인데, 여기서 이중생활이란 같은 사람이 서로 다른 두 ..
죽은 남편이 며칠 뒤 집 안 카메라에 나타난다면 가장 먼저 무엇을 의심할까요. 장비 오류인지, 누군가의 장난인지, 아니면 내가 알고 있던 사실 자체가 틀린 건지. 2024년 넷플릭스 시리즈 《비밀의 비밀(Fool Me Once)》은 바로 그 질문 하나로 8회를 끌고 갑니다. 저는 아이를 재우고 거실에서 혼자 이 드라마를 틀었다가, 예상보다 훨씬 오래 그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죽은 남편이 카메라에 나타난 순간, 드라마가 시작된다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에서 첫 훅(hook), 즉 시청자를 이야기 안으로 끌어당기는 초기 장치가 얼마나 강한지는 드라마 전체의 완성도와 직결됩니다. 여기서 훅이란 첫 회에서 던지는 핵심 의문으로, "다음 회를 눌러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내는 장치를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영국 드라마는..
넷플릭스 드라마를 켜며 잠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적 없으신가요? 저는 《에밀리, 파리에 가다》를 보다가 오히려 제 일상을 더 선명하게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파리의 화려한 로맨틱 코미디(Romantic Comedy)가 어떻게 육아 중인 평범한 하루를 되돌아보게 만드는지, 그 이유를 솔직하게 풀어봤습니다.파리라서 낭만적인 게 아니었다 — 드라마의 배경과 실제드라마를 처음 틀었을 때 솔직히 기대가 낮았습니다. '예쁜 배경에 예쁜 배우, 가볍게 보다 끄는 드라마겠지' 싶었거든요. 그런데 첫 에피소드부터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주인공 에밀리 쿠퍼는 미국 시카고의 마케팅 전문가입니다. 회사의 프랑스 럭셔리 마케팅 에이전시 인수로 갑작스럽게 파리 발령을 받게 되는데, 이 설정이 생각보다 흥미롭게 작동합니다. ..
솔직히 저는 이 드라마를 틀기 전까지 오스트리아 스릴러에 이렇게 빠질 줄 몰랐습니다. 넷플릭스 《우먼 오브 더 데드》 시즌 2는 주인공 블룸이 범인을 쫓던 사람에서 자신의 비밀을 숨겨야 하는 사람으로 바뀌면서 시즌 1과는 완전히 다른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복수가 끝난 뒤에도 삶이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 그 점이 제게는 가장 오래 남았습니다.분위기가 이 드라마의 진짜 주인공이었습니다제가 이 드라마를 끝까지 본 이유를 딱 하나만 꼽으라면 분위기라고 말하겠습니다. 화려한 액션도, 빠른 반전도 아닌데 화면을 보는 내내 묘하게 불안했습니다.《우먼 오브 더 데드》의 배경은 오스트리아 알프스 인근의 작은 마을입니다. 겉으로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풍경인데, 그 안에 권력자들의 비밀과 이해관계가 켜켜이 쌓여 있..
넷플릭스 《이런 엿같은 사랑》은 기억을 잃은 검사와 남자친구를 자처하는 남자의 이야기에서 시작합니다. 제목을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이게 실제로 방영되는 제목이 맞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보고 나니 제목이 생각보다 훨씬 정직했습니다.기억상실 설정, 신선한가 아니면 익숙한가기억상실(amnesia)이라는 소재는 드라마에서 수도 없이 반복된 장치입니다. 여기서 기억상실이란 사고나 심리적 충격으로 인해 특정 기간의 기억을 잃어버리는 상태를 말하는데, 국내 드라마에서 이 설정이 남발된 탓에 많은 분들이 "또 기억상실이야?"라고 반응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저도 처음에는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몇 화를 보기 시작했을 때까지만 해도 "익숙한 패턴이겠지"라고 넘겼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의 기억상실은 단순히..
이상한 드라마가 왜 이렇게 오래 생각날까요. 넷플릭스에서 《보건교사 안은영》을 처음 틀었을 때 저는 1화를 보다가 진짜로 멈칫했습니다. 보건실 선생님이 장난감 칼을 들고 알록달록한 젤리를 베는 장면이 나왔거든요. 그런데 6부작을 다 보고 난 뒤에는 젤리가 아니라 사람이 생각났습니다. 이 드라마가 결국 하려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직접 보니 조금 다르게 보였습니다.엄마의 눈으로 보니 젤리가 보였다《보건교사 안은영》에서 주인공 안은영이 가진 특별한 능력은 '투시력(clairvoyance)'에 가깝습니다. 여기서 투시력이란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지각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드라마에서는 이것이 '젤리'라는 형태로 시각화됩니다. 젤리는 사람의 욕망이나 억눌린 감정이 응어리진 존재로 묘사되는데, 이..